글쎄, 정말요?

가끔 들락날락 거립니다만,
마침 심심한 차에, 재미있는 글을 본 것 같아 트랙백을 날립니다.

보지도 않은 책 내용을 이러쿵저러쿵 하는게 좀 웃깁니다만,
대신 쓰는 것 만큼은 최대한 성의를 가지고,
최대한 솔직하게 쓰는 것으로 좀 때워보려고 합니다만..

혹여, 제가 놓친 부분이 있다면 가르침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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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일단 설득력 있어 보입니다. 
저런 경험들은 꼭 사회 전체에서 경향적으로 발견하지 않더라도,
개인적으로도 다들 그런 경험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제 경우에는 당장 떠오르는 것이 카메라인데,

한 10년전쯤 디카 보급되던 시절에, 꽤 작고 이쁘장한 컴팩트 들고 다니면서 이것저것 찍고 즐겁게 생활하곤 했었는데,
데세랄 구입 이후에는 내가 이짓을 왜 하나 싶거든요,
무겁기는 더럽게 무겁지, 크기도 더럽게 크지, 덕분에 책도 거의 못 가지고 다니지. 

솔직히 제가 소위 예술사진/상업사진 찍는 사람도 아니고,
폰카나 컴팩트 정도면 충분한 경우가 더 많은데도, 이게 익숙해진 이후로는 이걸 못 버리는 거죠.

관련된 경험으로 보더라도,

디카 보급되던 시절엔, 컴팩트 정도 들고 있으면 일단 사진찍는 사람이고, 취미인 사람인 느낌이였는데,
데세랄/수동 필름세랄정도 들고 다니지 않으면, 사진이 취미인 사람이 아닌 걸로 되고,
그래서 사진이 취미라고 말하고 싶은 사람들은 데세랄이나 수동을 사도록 만들죠.(독점)

사진이 주는 감성이나, 찍는 행위 자체의 행복 같은 것들보다 
고가장비 추종 위주로 점점 사진동호 문화가 바뀌어가고,
사진의 서사 구성력, 구도나 색배열, 감성 그 자체같은 것 보다
완전히 이론화된 사진광학이나, 사진술에 점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는 느낌도 있습니다.(과잉계획)

그뿐이랍니까, 돈백 돈천 부어서 데세랄 사 봐야,
일정 수준의 간지를 유지해주려면 한 3년마다 한번씩은 바꿔야 돼요.
디지털 사진기는 기술혁신이 매우 활발히 진행되고 있으니, 
처음 샀을 때와 동일한 효용을 주는 시기는 극히 짧을 수밖에 없지 않나요?(노후화)

뭐 그런 전차로,
1ds니 d3니, 아니면 중형이니..혹은 라이카 같은 초고급 카메라를 사용하는 이들에게 권력이나 이권이 집중되어 있고,
저 정도 물건을 써주지 않으면 사진사로 인정받지 못하는 식이 되어버렸죠.
역으로 말하면, 저 정도 물건을 살 재력이 없으면 사진사가 아닌 거죠?(양극화)


거 참.. 그게 그래요.

수동카메라, 거의 백년된 렌즈 가지고도 죽이는 사진 잘만 찍을 수 있고,
많은 경우, 내 일상의 아름다움을 담기에는,
폰카면 충분한 경우가 대부분이잖아요.

누구는 심지어 코닥 일회용 가지고도 작품사진 잘만 찍어내는데, 안 그래요?

사실은 필요하지도 않은, 오히려 그 물건이 사진을 종속하고, 평가를 옭아매고,
나아가 인간을 종속시키는 이 더러운 상황.
문제 있는 것 같아요. 동의하고 싶어요.

근데, 완벽하게 동의가 안 돼요.
책을 안 봐서 그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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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 제 취미라, 사진으로 이야기하긴 했지만,
체샤님은 사진계에서 저 따위하고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경력/명망있으신 분이니,
저런 이야기가 엄청난 왜곡이라는 것, 잘 아실 거라고 생각해요.
아마도 글 쓴 저보다 더요.

물론 저런 일들, 일어났고, 일어나고 있고, 앞으로 더더욱 심화될 거에요.
하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데세랄을 쓰고, 프레스/스튜디오 바디를 쓰고, 차를 타고, 비행기를 탈 거에요.
저런 걸 몰라서? 천만에요.

단순한 거 아니겠어요? 성장은/진보는 좋은 거니까요.

데세랄의 등장으로, 날카로운 묘사력을 가진/무지막지하게 큰 사진을 누구나 찍을 수 있게 됐어요.
무지막지하게 비싸고 좋은 사진기들이 개발되었기 때문에,
이전보다 더 깔끔한 사진을, 더 많은 곳에서 볼 수 있게 됐지요.

차는요? 차가 인간에게 가져다 준 행복과 기회들, 절대 무시할수 없지 않을까요?

그래서 더 많이 일하고, 더 많이 고생하고, 기계에 질질 끌려다닌다는 말, 저는 동의할 수 없어요.
데세랄이, 사진기가 등장하기 이전에는 이미지를 남기는 행위는 화가/선비 따위에게나 독점된 일이였고,
이런 식의 양극화가 없는 시대로 돌아가려면, 라스코 벽화 이전.
즉 회화/화가라는 행위/직업이 존재하지 않았을 때로 돌아가야 해요.

하지만 그럴 순 없겠죠.
우리는 이미지의 창작/감상이 얼마나 좋은 건지 이미 알고 있으니까.

이러나저러나, 사진기의 등장은 이미지창조의 양극화를  해소시켰고,
지금 시점에서의 디지털 사진기/ 디지털 SLR의 등장은 
그러한 움직임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 않던가요?


운송 수단도 마찬가지죠, 더 빨리 움직일 수 있으니 더 많이 일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사람들은 차가 없을 때도 먹고살자고 난리를 쳐 왔고, 아마 인간이 고생하지 않았던 시기는 존재하지 않겠죠.
오히려, 운송수단, 동력기관의 등장 때문에, 그리고 그 발전 때문에,
사람들은 더 조금 일하고 더 많이 먹을 수 있게 되었죠.

비록 경제적으로 굉장한 양극화를 겪고 있는 지구라지만,
분명 동력기관의 등장/발전 이전보다는 전체 사회의 효용은 상승하지 않았나요?
비율적으로, 죽어라 일하고도 굶어 죽는 사람의 비율은 확실히 하락하지 않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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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렇게 썼지만,
저 스스로도 가능한 도구에 의한 종속을 좀 피해보려고 노력하는 편이랍니다.
차로 보는 목적지 보다, 걸어가는 길을 더 보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정말로.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도구의 발전과, 경제의 성장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아무리 천박하게 느껴진다고 해도,
결국 모든 도구는 인간 전체의 후생 증대를 위해서 태어난 것들이니까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은,
도구에 의한 쾌락. 혹은 그 효용을 있는 대로 이용하면서,
그것에 나의 본질이 훼손되지 않도록, 항상 경계하는 것 외에는 없지 않을까 싶어요.

날씨가 점점 추워지네요. 건강 조심하세요.

ps.  '내가 대체 왜 이래 비판적으로 썼을까. 사실 똑같은 이야기인 것 같은데, 
       내가 덧붙인 얘기를 모를 리가 없는데.. 이상하다?'에 대해서 생각해 봤는데요,
     
       음... 전  이런 종류의 일들은, 지극히 개인적인 선에서 깨달아야 할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이 도구들이 나를/우리를 종속하고 있다는 것, 이것을 통하지 않고 더 많이 보고 느낄 수 있다는 생각은,
       본인이 어딘가 묶여있다는 느낌을 가지거나, 한 번이라도 그것을 벗어나 보지 않고는,
       백번 남이 말해 봐야 모르는 것 아닐까요?
     
       도구가 주는 쾌락이 더 중요하고, 소중한 사람들도 있을 거고.
      
       그냥 그게 맘에 안 들었던 것 같아요. 깨달음에 대한 강요. '이것이 옮다.'라는 태도.

       흐음.. 그러고보면, 딱히 강요도 아니고 권유 정도인 것 같은데.. 내가 왜 이랬지?


ps2. 아마 별 신경쓰지 않으실 거라고는 생각합니다만,
        블로그를 체샤 개인의 팬페이지로 운영하고 있으신 느낌이 있어서, 소심하게 써 봅니다.
        
        호의로 가득차 있지 않은 (더구나 장황하기까지 한)글을 이곳에 엮어 두는 것이
        좀 무례한 일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혹여 불쾌하셨다거나 하면, 사과드립니다. 

by Felo | 2009/10/18 13:43 | 배움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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